소설

신사의 행성

신사의 행성 대표 이미지

2026 espoo에서

그 행성에서는 누구나 죽음 뒤에 신이 된다. 사후의 세계는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공개된 코드도 레퍼런스도 없이 오로지 상상력과 손재주만으로. 우선 빅뱅을 일으킨 다음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는 편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적인 견해-라고 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누구나 한 번 쯤은 고려해보았을 법한 옵션이다. 빅뱅 이후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어쨌든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까지는 교육받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시간은 좀 걸려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첫 생명체를 만날 때까지 135억년동안 기다릴 자신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냉큼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을 나는 생전에 본 적이 없다. 고작 스무 해도 살지 못한 어린아이들을 제외하면 말이지. 어렸을 땐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시간축 위에 흩뿌려진 모든 사건들은 갓 포장을 뜯은 것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포장을 뜯은 지 얼마 안 된 여리고 작은 가슴을 강렬하게 쥐어뜯고 지나간다. 그렇기에 그들은 135억년이라는 시간을 낙관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새로운 사건들이 밀려들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 때문에. 그러나 인생은, 결국 변주곡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소속을 옮기고 경력을 쌓고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사람들은 문득 어떤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묘한 기시감 속에서 변주되는 하나의 코드-그 어떤 일도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모든 처음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우리는 부지중에 이전과 같은 선택을 반복하며, 이전과 같은 결과로 이끌려간다. 나름대로 서곡도 있고 클라이맥스도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카운터 멜로디를 끌어들여 흥미로운 구성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 멜로디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나면 시간이라는 것을 질량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절실한 현실감을 띤다. 생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여자친구들 중 하나는 고백하듯 말했다. “아이가 도움이 돼. 우선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강렬한 경험이고, 그 뒤에 이어지는 일들도 인생의 초반에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라 신선하거든. 어떤 아이가 아이에게 젖을 물려보겠어? 게다가 출산 직후에는 뇌와 몸의 작동체계가 완전히 바뀌어서,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돼. 인생의 과업을 하나 달성했다는 만족감도 느낄 수 있고….”그녀는 이쯤에서 말을 멈추고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 벌레먹은 쌀을 골라낼 때처럼 가느스름한 눈으로. “그 애의 유년을 빌려쓸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안심한듯 웃었다. 내겐 아이가 없지만 어렴풋이 상상해본 적은 있었다. 세포 하나를 아기로 만들고 세상 밖으로 꺼내어 기르는 일은 분명 기이한 자급자족일 것이다. 아이는 무엇이든 새로 배워야 한다. 기지개 켜는 법에서부터 해가 뜨고 지는 원리까지. 세상에 대한 순수한 경탄이 나의 닳은 부분을 새삼 반짝이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번째 유년기를 가져볼 수 있다면 결혼을 해도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치 죽지 않고 새로 태어나는 듯한 감각이야. 너는 도저히 알 수 없겠지만.”여자친구가 이렇게 덧붙이자, 다른 여자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다시 사후의 일로 돌아갔다. 어떤 사후 세계를 가꾸고 싶은지. 여자친구들은(모두 출산 경험이 있었다) 하나같이 ‘내 아이를 다시 만나고 싶어’라고 말해서 나는 약간 길을 잃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끼리만 만날 수 있는 따스한 공감의 영역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결혼하지 않고서는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나로서는 ‘그건 주제에서 벗어난 대답이야’라든지 ‘아이의 분신을 만들어 살겠다는 거야?’ 하는 신사답지 못한 지적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하긴 나는 누가봐도 신사는 아니다. 그래서 여자친구들도 나와 놀아주는 것이고…. 아무튼 친구들과 사후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서둘러 아이를 낳아 길러봐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결론이었다. 아무튼 생전에 최대한 많은 레퍼런스를 쌓아두는 게 좋겠다고 우리는 이야기했다. 내세는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공교롭게도 나는 바로 그 다음날 일하러 가는 길에 죽었다. 열차 사고였다.

초반 얼마간은(몇 시간일까 며칠일까?) 상황을 이해하는데 썼다. 돌려 볼 CCTV도 없었으므로 오로지 남은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다. 다행히 기억은 분명한 편이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출근길이라 사람이 많았다.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탈 예정이라 출입구 근처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까딱 잘못하면 인파에 밀려 제때 내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 밖의 플랫폼이 미끄러지듯 멀어졌다. 역사의 가로로 긴 창 밖으로도 바깥 풍경이 보였다. 그러니까 창 밖의 창 밖. 그 두 풍경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가 속력을 높임에 따라 반짝이는 물결과 먼 현수교와 플랫폼의 잔상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그 순간에…. 큰 소리가 났던 것 같다. 너무 큰 소리라서 미처 소리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진동이 온몸을 흔들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혈관을 흐르는 피 한방울까지 떨려서, 나는 내 몸이 터져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문득 인식했을 때 나는 날고 있었다. 주변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중을 돌았다. 구겨진 종이처럼 쭈꿀쭈굴해진 열차의 내부가, 반대쪽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선두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가까운데,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벽이 내게 밀려들었다. 죽음의 순간은 짧았다. 아마 머리를 세게 부딪혔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든 충격이었는지 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내겐 고통도 고통의 흔적도 없다. 사실 몸조차 없다. 순수한 사념으로서 존재하는 듯 한데 상상해온 것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이다. 아니, 불편하지는 않다고나 할까.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광막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은 아니다. 나의 사후는,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이상할지 몰라도, 너무 넓거나 좁지 않고 딱 적당하다. 솔직히 좀 착잡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죽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상일 것 같다. 왜 하필 그 열차를 탔던 걸까.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출근길에는 두 코스가 있다. 하나는 상행선을 타고 바로 직장까지 가는 대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코스고 다른 하나는 하행선을 타고 환승하는 코스. 복잡한 게 느린 것보다 싫기에, 보통은 전자를 택한다. 그런데 오늘은(오늘이라고 말해도 좋다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하행선을 탔던 것이다. 제발로 사기꾼을 찾아가는 멍청한 피해자처럼. 평소처럼 상행선을 탔으면 죽지 않았을텐데. 나는 좀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어떤 슬픔도, 회한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습관적으로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았을 뿐 간절히 되돌리고 싶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삶의 의지 또한 죽음과 함께 날아가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아!

세계의 첫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열차가 플랫폼을 채 빠져나가지도 전에 끝났으니 나는 그 행성에서 죽었다. 그 행성에서는 누구나 죽음 뒤에 신이 된다. 신에게 인간사의 미련이 남아있으면 아무도 신세계를 창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되돌려 다시 살아가거나 자식을 만나러 가겠지. 이게 법칙인 것이다. 미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빅뱅은 안 돼. 나는 읊조렸다. 이것이 첫 계율이 되었다. 기억해줄 사람이 없으므로 금세 잊혀지겠지만. 아무튼 빅뱅은 유효한 옵션이 아니다. 나는 135억년을 홀로 있을 자신이 없다. 그랬다간 정신이 손쓸 도리 없이 망가져 인류의 첫 문명 단계에서 제거당할 악신이 되리라. 심리상담가를 만들어봐야 도움을 얻기는 힘들겠지. 그는 결국 나의 일부일테고, 내겐 심리상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으니까. 내게 있는 건 매체를 거쳐 가공된 이미지 뿐이다. 나긋한 말투, 품이 넉넉하고 고급스러운 옷, 티백, 노트 혹은 서류철, 약간 어두운 실내의 분위기, 갈색 가죽 소파에 누워 뭔가를 털어놓는 환자…. 알 수 없는 시간을 나는 망설임으로 채웠다. 그러다 결심을 세우고 신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조약돌 모양의 신이었다.

신은 침착했다. 그것이 내게 있는 신의 이미지였다. 나는 종교가 없기에, 오히려 여러가지 종교를 뒤섞은 이상적 신의 형태를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부처 같았으며 또 어떤 면에서는 야훼에 가까웠다. 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손바닥도 만들었다), 세상을 창조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묻자 그는 말했다. 생각을 해. 그리고 그걸 끌어당겨 떼어내는 거야. 올바른 방법을 물어봤으니 올바른 모양으로 만들어야겠지. 요령을 깨치면 할 수 있어. 나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러자 신은 몹시 신 다운 태도로 인자하게 말해주었다 어쩔 수 없지.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만 할 뿐인걸. 나도 그렇단다. 네가 내게 숨 쉬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줘봤자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떠나보내려무나. 떠나보내면? 언젠가 돌아오겠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그래, 그래. 하지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신을 떠나보낼 장소가 필요했으므로 나는 강을 하나 만들었다. 강줄기가 흘러가는 모양대로 우리의 우주가 확장되었다. 우리? 신은 나의 표현을 곱씹었다. 나는 서둘러 큰따옴표를 발명하고는 설명했다. “복수형을 쓰고 싶었어.” “이건 네 세계야.”“알고 있어. 그냥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다른 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고 싶었을 뿐이야.”“이건 네 세계야.” 조약돌 모양의 신이 반복했다. “누군가를 끌어들이려 할 땐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해. 그때부터는 너만의 세계가 아니게 되니까. 그건 정말 복잡한 일이란다.” 그의 말은 내겐 일종의 계시처럼 들렸다. 신의 의견이니 신탁이라고 봐도 좋을 듯했다. 델포이의 무녀처럼 나는 신을 소중히 감싸쥐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던졌다. 신은 강의 잔잔한 표면에 물수제비를 튕기더니 하류를 향해 조용히 떠밀려갔다. 다음으로 한 일은 시점을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가깝고 <너>는 부담스러워서, 신은 자신을 삼인칭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바닥 하나와 강줄기가 보였다. 쓸쓸함이 일인칭과 삼인칭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이렇게 처량맞아 보일 줄은 몰랐는데. 그는 손바닥의 반대편 짝을 맞추고 내친김에 발과 다리도 한 쌍씩 만들었다. 그러자 사지를 끼워 둘 몸통이 필요해졌다. 이대로는 목이 날아간 시체같으니 머리도 있어야 했다. 머리카락도 추가하자. 몸에 난 털은 보기 싫으니 빼고 대신 눈썹을 짙게 만들어볼까. 키는 더 큰 편이 좋겠다. 근육도 좀 붙이고. 쓸 일은 없지만 이왕 하는 거 성기도 만들어 두는 편이…. 결국 완성된 모습은 생전의 자신과 닮았으나 좀더 젊고 잘생긴 버전의 근육질 남자였다. 민망함을 느낀 신은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 신은 모든 남자들이 하는 짓을 했다. 민망함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언젠가 시간을 만들면 저절로 삭아 없어지겠지. 그는 민망함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러 뻔뻔한 얼굴을 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하나 만들었다. 소녀는 (당연히)신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그녀는 쌍커풀진 큰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표정엔 생기와 호기심이 넘쳤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깨끗한 이마와 아직 이도 다 자라지 못한 듯 날렵한 모양의 턱이 소녀의 미래를 점치고 있었으나 신의 의지에 따라 그녀는 무사히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할 것이었다. 신은 자신의 피조물에 감탄했다. 그녀는 그가 만나 본 그 어떤 소녀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는 생전에 모델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따라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길거리 비둘기보다도 많이 보았다. 따지자면 그들은 이미 소녀가 아니었으나 혹독한 다이어트를 지속해온 탓에 덜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소녀는, 신이 그렇게 창조했으므로, 의심의 여지 없이 소녀였다. 신은 손을 뻗어 자신의 피조물을 만져보았다. 하얀 이마와 작고 뾰족한 코끝을, 뺨을, 앞니와 입술을. 소녀는 경계심을 품지 못하고 도리어 얼굴을 내밀어주었다. 신이 자신의 취향에 환멸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고 있을 때 소녀가 나직이 말했다. “윤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아.”“아냐, 아냐.”신은 번뜩 정신을 차리곤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황급히 소아성애에 대한 지식을 끌어모아 터부로 만들었다. 그것이 두 번째 계율이었다. “너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 모성애를 가진 소녀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 정도로 처참한 인간은 아냐. 물론 널 만든 건 나지만, 어떤 욕망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애초에 널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신은 횡설수설했다. 자신이 인간인지 신이지 분별하지도 못할 만큼. 소녀는 알쏭달쏭한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말에 성적인 암시를 담을 필요는 없어. 꼭 네가 나보다 많이 아는 것처럼, 순진한 나를 네가 유혹하는 것처럼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거야.”“난 태어나서 좋은데.” 소녀가 말했다. “뭐?”“왜 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태어나서 좋아.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신은 한숨을 쉬었다. 신의 몸에서 빠져나온 한 모금의 숨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의 저편으로 홀연히 날아갔다. 민망함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소녀라니. 그것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소녀를 만들어 버리다니. 나이 많고 모자란 남자와 딱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 아닌가. 부끄러움은 그의 두 번째 한숨에서 탄생했다. 자신의 세계가 온갖 지리멸렬한 것들로 채워지기 전에 신은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라면 수소 대신 이산화탄소가 우주의 빈 공간을 메울지도 몰랐다. “태어나서 기쁘다니 다행이구나.” 신이 말했다. 신 다운 인자함을 뽐내려고. “기쁘다고 하지는 않았어. 태어나서 좋다고만 말했지.” 소녀도 소녀답게 맹랑한 말투로 답했다. “그래….”“그리고 아직 기쁨은 존재하지 않잖아?”“너를 만들었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단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는 기쁨이 존재하는 셈이지.”“흐음.”소녀는 예쁜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강줄기를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신도 그 뒤를 따라 걸었는데, 소녀가 대뜸 무슨 말을 던질 지 조마조마해서였다. “아저씨는 신인거지?” 예를 들어 것. “나도, 그리고 이 강도 전부 아저씨가 만든 거지?”“그래. 그리고 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단다.”“하지만 머리에 떠오른 게 그런 호칭이었는걸. 그건 내 책임은 아냐.”“알고 있어. 너는 내가 만들었으니까.”“전부 아저씨 책임이야.”“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신은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 “말투랑 표정도 좀 고쳐. 사람들이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안 그런 척 하더니 취향 한 번 추접스럽다고 할 거 아냐. 미소녀라니, 아무도 못 봐서 다행이지. 어휴.”“내가 부끄러워?”“널 만든 내가 부끄러워.”“내 책임은 아냐.” 소녀는 약간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사실이었으므로 신은 미안해졌다. 소녀에게 사과하려던 순간, 이 또한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다음 장면도 예측할 수 있었다. 1. 그가 쭈뼛대며 사과한다. 2. 자신의 낮은 사회성과 요령 없음과 부족함에 대해 나불거린다. 소녀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 3. 이제 끝났다고 여기며 절망하는 순간 소녀다운 천진난만함이(그러나 속 깊은 배려가) 그를 구원한다. 장난을 치거나 응석을 부리거나 재채기를 하곤 장면을 뒤집는 식으로. 무언가에 놀아나고 있는 듯했다. 마치 세상에는 미리 작성된 대본이 있고, 거기에 적혀 있는 대사와 지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은, 많은 남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소녀와 함께 존재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성장기의 티 없는 육체를 보고 느끼는 미학적인 쾌감 뿐만은 아니었다. “나는 네가 날 좌지우지해주기를 바라나봐.” 신이 털어놓았다. 신이 인류에게 하는 첫 번째 고백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운명적으로 미숙해서 내게 종속되기를 바라. 날 깔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러러봐주기를 원하는 거지. 생전에 나는 여자친구들과 함께 그런 종류의 남자를 욕하곤 했어. 그런데 결국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너를 원하고야 말다니, 민망하면서도 허탈한 기분이야. 남자란 남자라는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 걸까.”소녀는 상냥하면서도 무관심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글쎄. 나는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화랑은 관련이 별로 없어서….”“나도 너랑 그런 걸 함께 생각하기 어려워.”“그러니까.”“여자란, 특히 너 같은 어린 소녀란 나에겐 늘 미지의 생명체였어. 나는 여자 친구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들은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거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서 하나의 일반론으로 묶어 생각할 수가 없지. 적어도 여자라는 생물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는 얼마간 동떨어져 있어. 바로 그 부분에 대해, 그러니까 내가 아는 여자들과 일반적인 여자들 사이의 갭에 대해서 나는 하나도 알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 결국 아무에게도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 증거같기도 하고. 평생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지만 나와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여자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모델 에이전시에서 일했다고. 아름답고 상처받은 여자들로 가득한 곳 말야. 나는 그들의 좋은 친구였어. 데이트가 모자란 적은 없었으니 남자친구 감으로 가늠되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결국 여자와 살 수 있는 건, 나보다도 더 여자에 대해 모르는 남자들이더군.”“이상한 일이네.”“이상한 일이야. 너희는 너무…복잡해.”“여자란 여자라는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인걸.”소녀가 신의 말을 인용했다. 신은 농담을 알아듣고 피식 웃었다. 소녀에게 있는 것은 신에게는 없었다. 신에게 있는 건 소녀에겐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는 건 신이 늘 바라왔던 일이었다. 그가 아는 여자들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쯤은 다 스스로 할줄 알아서 한 번도 이루어지지는 못했던 욕망이었지만 그러했다. 소녀가 자신을 도구삼아 몸의 빈 부분을, 이왕이면 운명적인 결함을 채우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성적인 은유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여긴 아무것도 없네.”소녀가 말했다. 신은 주변을 둘러보고 어깨를 으쓱 들먹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토끼가 살 수 있을까?”소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신은 토끼 한 마리를 준비했다. 소녀의 표현과는 달리 그곳엔 강이 흐르고 있었으므로 강줄기를 거두어 들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흘러간 물을, 안개를, 모래를, 자갈돌과 바위를, 그리고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언제나 강과 함께 존재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세상에 태어난 작은 생명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주워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은. 드러난 강바닥은 너무나도 흉했으므로(그는 아름다움을 신봉했다) 신은 그 자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채워야 했다. 그러자 풀이 돋았고, 개중엔 토끼가 먹기에 적당한 풀도 있었다. 신은 토끼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토끼가 코를 씰룩거리며 풀을 뜯었다. 강이 있었던 자리를 따라 제초하며 나아갔다. 세계는 아직 구가 아니었으므로 토끼는 어디까지나 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작은 토끼가 헤쳐나갈 외로운 모험을 신은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런 이유에서, 언젠가는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세상의 구부려 끝과 끝을 맞대고야 말았다. 토끼가 세상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한 세월이 흘러갔다. 그것은 강줄기가 흘러간 거리와 같았다.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토끼는 더 이상 먹을 풀이 없음을 알았다. 풀이 없다면 토끼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신은 고작 토끼 한 마리를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었는지를 깨달았다. 토끼를 위해 무를 만들 수는 없었다. 무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무가 아니었다. 그 자신이 신인 이상, 무는 앎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토끼가 뛰어놀 곳도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토끼가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시작과 끝이 붙은 고리였다. 삶이란 시작부터 모순과 자가당착의 연속이었다. 설령 그것이 작은 토끼 한 마리의 삶이더라도. 소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게 된 신은 더는 신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2월의 마지막 날을 찢어 토끼를 꽁꽁 쌌다. 그리고 소녀를 찾아갔다. 결국 답을 찾을 수 없었노라고 사과할 생각이었으나 소녀는 이미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고 토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건 뭐죠? 여인이 달력으로 싼 토끼를 고갯짓하며 묻자 남자는 얼결에 선물이라도 대답했다. 여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알지 못하는 이유로 그들은, 그러니까 신이 아닌 남자와 소녀가 아닌 여자는 서로에게 몹시 끌렸다.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피로연에는 토끼구이가 나왔다. 이것이 그 세계의 창세기 신화다. 만약 당신의 문화권에서 결혼과 토끼가 이유없이 연관된다면, 혹은 2월이 다른 달에 비해 짧다면, 당신은 그 소녀의 자손이라고 진지하게 믿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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