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슬픈 외국어

슬픈 외국어 대표 이미지

스웨덴에 살던 시절 쓴 짧은 소설입니다. 2019년 독립출간한 단편집에 실었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 같아 서랍에 넣어둡니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알란다에서 바르셀로나 엘 프랏으로 가는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1월이었고, 날씨는 흐리고 추웠다. 비가 오는 것은 아니었으나 짙은 회색의 구름이 지면 가까이 두텁게 뭉쳐 있었다. 빵처럼 조밀하고 단단해 보이는 구름이었다. 칼을 들고 나가 썰어내면 네모난 모양의 구름을 안고 돌아올 수 있을 것처럼. 시간은 벌써 세 시 반이었다. 예정된 보딩타임은 두 시간 전이었으나 몇 차례나 연착되는 중이었다. 천둥번개가 치는 것도 아닌데 비행기는 좀처럼 뜨려 하지 않았다. 나는 구름의 모양을 구경하는 일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빵처럼 생긴 구름이든 밥처럼 생긴 구름이든 몇 시간을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게이트는 관광객으로 꽉 차있었고, 몹시 부산스러웠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한 무리는 앉을 자리가 부족해 바닥에 진을 치고 앉아있기도 했다. 옆 벤치에서는 스페인 할머니 세 명이 원통 모양으로 포장된 쿠키를 나눠먹는 중이었는데, 부산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대체 왜 1월의 스웨덴에 방문했던 걸까? 겨울의 북유럽은 지독한 우울로 가득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관광 같은 것을 해봐야 침울한 분위기를 듬뿍 묻히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늘에서 축축하게 말린 공무원을 기념품으로 사갈 수도 없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었으나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스페인 할머니 중 하나가 내게 왜 친구들과 떨어져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곧 중국인 관광객들을 가리키는 것을 깨닫고 일행이 아니라 답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쿠키를 서너 개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 입에 물었다. 당시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던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외국어를 배울 땐 낯선 이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낯선 사람과 수다를 떨 만큼 변죽이 좋은 편은 아니다. 실은 좀 소심한 축에 속해서, 짐보따리를 짊어진 할머니를 봐도 눈을 피하며 지나친다. 짐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만 짐을 들고 가는 동안 할 말이 없는 탓이다. 그러나 길 잃은 외국인은 잘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때도 스페인어를 좀 써보고 싶었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항공편인만큼 주변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득시글했다. 할머니들에게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 내게 더 관심이 없는 듯해 단념했다. 대신 맞은편 벤치에 홀로 앉은 남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는 스페인사람처럼 보였다. 짙은 머리색에 이마와 턱이 단단했다. 약간 마른 체형에 키는 중간 정도. 가벼운 재킷 차림이었지만 옷의 만듦새로 보아 고급 제품인 듯했다. 신발과 시계 취향도 좋았다. 전반적으로 그다지 멋을 부리지 않은 편안한 차림새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무엇보다, 그는 고독해보였다. 적어도 스스로를 고독하다고 믿는 삼십대 초중반의 남자였다. 외국어로 수다를 걸어보기에 그런 이들보다 적합한 사람은 별로 없다. 스스로를 고독하다고 믿는 남자일수록 낯선 사람의 질문에 허겁지겁 속내를 털어놓곤 하니까.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네 보았다. 그는 매우 놀란 듯 어깨를 크게 들썩이더니 이내 예의바르게 웃어보였다. 나는 그에게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길이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내게 여행중이냐고 물어보았다. 듣기 좋을만큼 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에, 군더더기 없는 억양이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웁살라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어요. 바르셀로나엔 세미나 참석을 위해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과연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나는 바깥의 회색 하늘을 향해 살짝 턱짓하며 말했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조그맣게 웃어보이곤 고개를 여러번 주억거렸다. 무언가 적절한 말을 하고 싶은데 잘 생각이 나지 않거나, 내 말에 너무나도 공감한 듯했다.“바르셀로나는 처음인가요?” 남자는 물었다. “아주 예전에 여행한적이 있어요. 그땐 바르셀로나를 거쳐 스톡홀름으로 갔죠.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니다.”그는 친절한 말투로, 마치 자기가 바르셀로나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겸손하게 말했다. 그것은 좋은 농담소재였으나 외국어로 남을 웃기기까지 하는 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대신,“날씨가 흐리네요.”하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우리는 잠시 창 밖에 시선을 두었다. 스웨덴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여행을 좀 했어요.” 그가 간단히 말했다. “1월에요?”“네.”“왜 그런 짓을?”“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1월의 스웨덴은 굉장하더군요. 사람은 없고, 날씨는 우중충하고….”“먹을 만한 건 미트볼 뿐이고요.”“네. 일주일동안 미트볼만 먹다가, 관광객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인도 음식점으로 향했지요.”“커리 맛은 어떻던가요?”“바르셀로나랑 똑같았어요.”“좋네요.” 우리는 잠시 커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도에서 먹는 진짜 커리와 바르셀로나의 인도 식당에서 파는 커리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전혀 다르지 않다-, 어째서 커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겨울의 북유럽은 어땠느냐고 물었고, 그는 평생 볼 눈을 전부 보았다고 답했다. 문득 ‘눈’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져 조그맣게 발음해보았다. 책의 끄트머리를 접듯 잠시 말이 멈추었다.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이에요.” 내가 말했다. “아직 서툴지만.” “무척 능숙한데요. 처음에는 스페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그래요? 언제 들켰죠?” “바르셀로나에 가우디 세미나를 들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을 때요. 스페인 사람이라면 외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겠죠.”“그건 그렇네요. 다음에 스페인 사람인 척 할때는 꼭 참고하죠. 아무튼 그래서 얘기나 좀 하고 싶었어요. 어때요, 귀찮지는 않나요?”“아뇨, 무척 즐겁습니다.”“이제 귀찮아도 어쩔 수 없어요. 커리 얘기까지 했잖아요. 이대로 아무 말 없이 비행기가 뜰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어색해서 차라리 바르셀로나까지 걸어가고 싶을 거예요.”“하하.”남자가 작게 웃었다. 긴 손가락 끝을 마주쳐 쐐기 모양으로 겹쳤다. 그리고 한동안 손끝에 시선을 두었다. 공항은 여전히 어수선했고, 뒤편의 중국인 관광객들은 어느새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도움이 좀 돼요?” 그가 생각난듯이 물었다. “당신이랑 이야기하는 거요?”“네.”“그럼요.”“보통 어떻게 하죠? 그러니까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할 때 말예요.”“지금처럼 아무 이야기나 해요. 제 생각에 사람들은 사실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사니까요. 그런 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이야기할 수 없죠.”“왜일까요?”“일일이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그렇다고 간단히 말해버리기엔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요. 낯선 사람에게라면 마음대로 말할 수 있죠. 쓸데없는 변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고요.”“심리상담가보다 낫군요.”“돈도 들지 않아요. 훨씬 낫죠?”“네.”“그럼 당신도 뭔가 말해보지 그러세요? 좀처럼 없는 기회랍니다.”“제겐 그다지 할 말이 없는걸요.”“아뇨. 있어요.”“음…. 스페인어를 배우려면 나보다는 당신이 말하는 편이 좋을 텐데요.”“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나는 외국어를 배울 때 음부터 익히거든요.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답니다. 어떤 걸 듣느냐의 문제죠.” “어떤 걸 듣느냐?” “한 마디라도 좋으니 진짜 문장이 필요해요. 녹음된 성우의 목소리 말고, 다섯 살 아이에게 하듯 또박또박 말해주는 선생님의 말투 말고 진짜 문장. 외국인에게는 누구나 그런 친절을 발휘하잖아요? 나는 그게 싫어요. 바보 취급 당하는 기분마저 들죠. 마치 정확한 발음과 억양이 지성인의 신분증이라도 된다는 듯이…. 하지만 내 지능은 정상이라구요. 단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뿐이에요.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가위질을 할 때처럼.”“당신은 신기한 방식으로 말하는군요.” “제 말투가 이상한가요?” “이상하지는 않습니다.”“그럼요?” 남자가 빙긋 웃어보였다. 눈이 아닌 입술로만 짓는 미소였다. 그의 갈색 눈 깊숙한 곳에 뭔가 매끈한 것이 얼핏 비쳐보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저희 아버지는 평생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평생 단 한 번도 말이에요?” 나는 내 스페인어가 부족한 탓에 무언가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미묘한 억양의 차이를 캐치하지 못했거나, 흔히 쓰이는 관용적인 표현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그러나 남자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한 번도 자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어요?” 남자는 애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표정에는 아직 정산되지 않은 혼란이 남아있는 듯했다. 비유적인 표현은 아닌 듯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의 긴장된 얼굴 근육에서는 어떤 종류의 즐거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도 잠을 잤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났을 무렵엔 이미 전혀 주무시지 않게 된 이후였어요. 그러니까 평생은 아니겠군요.”“아버지가 잠든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나요?”“없어요. 낮에도, 밤에도. 아버지는 늘 맑은 정신을 유지하셨어요. 선천적인 쇼트 슬리퍼들이 있죠. 서너 시간만 자면서도 멀쩡히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 말예요.”나폴레옹, 다 빈치, 에디슨. 나는 떠오른 쇼트 슬리퍼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하지만 쇼트 슬리퍼라고 알려진 사람들조차 적어도 세 시간은 잤어요. 부족한 잠은 대부분 낮잠으로 채웠고요. 나폴레옹은 말 위에서 잠들기로 유명하잖아요.”“맞아요.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과 비슷했어요. 다만, 한숨도 자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죠. 힘든 일을 하고나서 지치는 일은 있었지만 절대로 주무시진 않았습니다. 잠시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기력을 회복한 뒤엔 다시 평소처럼 활동하셨어요. 마치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요."“그렇다는 건…." "아뇨, 눈을 감고 계신 동안 짧게 주무신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저 눈을 감고 계셨을 뿐이죠. 부르면 즉각 대답해주셨고, 자고 있다는 기척도 느낄 수 없었어요. 무엇보다 일상적으로 그런 회복 시간을 갖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소파에 앉아 눈을 감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었어요. 다른 쇼트 슬리퍼들처럼 아버지도 일에 열정적인 분이셨습니다.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계셨는데, 어떤 일에 관해서도 타협이 없었죠. 대부분의 시간동안에는 신경외과 의사로 활동하셨지만 짬짬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셨고, 역사서도 쓰셨어요. 스키와 카약 선수로도 활약하셨고요. 게다가 정말이지 가정적인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셨고, 모두가 잠든 다음 집안을 점검하는 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으셨어요. 집안의 모든 의례적인 행사를 주도하시기도 했고요. 새가 지붕에 알을 낳는 계절이면 누구보다 빨리 모이통을 매달아 놓으셨어요. 아버지는 마치 어디에나, 언제나 계시는 분처럼 느껴졌죠.” 남자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중한 침묵 사이에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깊이가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허함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님의 빈자리가 크겠군요.” 나는 이렇게 말해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말투로 짐작했어요. 넘겨짚었다면 미안해요.”“아녜요. 짐작하신 게 맞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세요. 네, 빈자리가 무척 커요. 이 자리를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를 만큼요. 문득 부재감이 느껴지는 것 만으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어요. 아마 나머지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다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단순히 슬픔에 목이 메인 것이라기에 그의 표정에는 심상치 않은 혼란이 남아있었다.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핀볼처럼 얼굴의 구석구석을 튕겨 돌아다니는 종류의 혼란이었다. 나는 그 깊은 혼란을 감지하고 그의 말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창밖의 짙은 구름같은 조밀한 불안이 그의 눈에 얼핏 스쳤다. 그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말을 이었다. 실 뭉치의 끄트머리를 찾듯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를 정한 듯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영면에 드셨습니다. 이런, 잠이 오는 군. 이 말이 마지막이셨어요. 모두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침실로 가셨습니다. 양치질을 하고, 얼굴을 닦고, 새 잠옷을 입은 뒤 침대로 들어가셨어요. 아버지에게 잠옷이 있다는 것도 저는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잠옷을 입을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꼬박 세 달을 한 번도 깨지 않고 주무시다가 그대로 돌아가신 겁니다. 세 달동안 저희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 아버지의 죽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잠옷을 입고 침대에 파묻힌 아버지는 관속의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잠옷은 수의가 되겠군요.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잠든 아버지의 머리맡에 모여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해드렸어요. 노인이나 병자에게 으레 그렇게 하듯이 말입니다. 이별을 위해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 어머니는 밤마다 아버지 옆에 누워 주무셨어요. 아버지는 그저 잠들어 계셨을 뿐이니까요.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이불을 목끝까지 덮어두면 더워서 땀을 흘리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아버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아침 어머니는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담담히 그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아버지의 몸이 더이상 따뜻하지 않더구나, 라고요. 저희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그 소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슬픔과는 별개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건처럼 여겨졌어요. 아침 하늘에 먹구름이 떠있더니 오후에는 결국 비가 오는 것처럼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례 전 마지막 인사를 위해 침대로 찾아가보니 아버지가 마치 잠든 것처럼 누워계셨어요.”“한국어에는 그런 죽음을 표현하는 말이 있어요. 평화롭고 부드러운 방식의, 완전한 죽음 말이에요. 스페인어로는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비꼬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요.”“마음으로 알아 들을게요. 그런 단어가 있다면 좋을 것 같군요.” 그는 자그맣게 웃어보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미소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마음으로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어요. 아버지는 많은 직업을 갖고 계셨던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알고 지내셨어요. 그중 저희가 아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저희는 아버지를 의학 교수와 역사학자를 겸한 신경외과의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딱히 진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어떤 이들에게는 의사를 겸한 역사학자로서, 어떤이들에게는 신경외과의였던 스키 선수로서 받아들여졌죠. 아버지는 실로 다양한 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그 괴리감에 당황스러워 했어요.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면 아마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 모두가 아버지의 일부분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장례식을 찾은 이들은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접점을 도저히 유추해낼 수 없는 사람들도 찾아왔어요. 아버지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엘리트였습니다. 번듯한 직업이 몇 개나 있었고, 수입도 높으셨어요. 지역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가꾸어진 환경에서만 생활하셨지요. 적어도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뱃사람처럼 보이는 남자 몇몇이 저희에게 조의를 표했습니다. 뱃사람, 아니면 인부…. 아무튼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 같았어요.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장레식의 규모와 참석한 사람들의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대화를 해보니 그들은 트레일러를 모든 장거리 운전수들이었고, 아버지도 그 중 하나였어요. 저희로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다는 사실도 그날 알게 되었습니다. 건축 기술자가 아니라, 인부로서 말이에요. 아버지는 새벽의 노동자들을 실어나르는 커다란 버스에 몸을 싣고 여러 번 건설 현장에 나가 육체노동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동료 인부들 모두 아버지를 가리는 일 없이 하는 육체노동자로 알고 있었어요. 인부로서의 아버지는 차라리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체 왜 그런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일을 하셨다는 것 정도는 기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랑자들, 서커스단원들, 알 수 없는 종교인들도 여럿 찾아왔어요. 그들은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지만 모두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해보였어요. 저희는 아버지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더이상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멈춘 후 한참이나 지났지만,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대답이 그의 여기저기 터져나온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테두리라도 되어 줄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한참동안 생각해보다가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된 이야기예요?” 남자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장례를 마치고 바로 스웨덴으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로 보름이 되었어요.”“스웨덴에는 왜 왔죠?”“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아 일단 공항에 갔어요.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비행기가 스웨덴행이었기에 탔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는 다시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허공이 그의 눈빛에 가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것은 구름이 걷힌 틈으로 비어져나오는 햇볕이 공항의 매끈한 바닥에 떨어져 드리우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나는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구름의 사이사이로 햇빛이 가느다랗게 새어나와 꼭 투명한 오렌지빛 커튼처럼 보였다. 이런 걸 스페인어로 어떻게 말하더라, 고민해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당신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닐까요? 눈을 뜨고 있는 동안, 그의 내부는 이미 잠들어 있었던 거죠. 짐작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소진해야만 했을 거예요.”“소진해야만 했다. 무엇을요?” 남자는 불안한듯 물었다. “글쎄요. 피로의 반대편에 있는 것…. 아무튼 그런 걸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셨을지도 몰라요. 확실하고 실제적인 피로가 필요해서요. 마침내 그것이 반대로 뒤집혔고, 아버지는 내내 주무실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서툰 외국어로 말한 탓에 내 말은 아주 슬프게 들렸다. 슬픔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처럼.“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남자가 입을 쩝 뗐다. “아버지에게 저희는 과연 유일한 가족이었을까요? 어디선가 우리가 모르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도저히 이런 생각을 떨어낼 수가 없습니다. 여행을 해봐도 소용 없군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길게 침묵했다. 곧 보딩이 시작되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바닥에서 일어나 길게 줄을 섰다. 새처럼 졸던 스페인 할머니들도 문득 잠에서 깨어 짐을 꾸렸다. 여전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남자와 나의 자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행 시간동안에는 서로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기내는 잠수함처럼 고요했고, 구름 위는 한없이 밝았지만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활자는 눈 앞에서 녹아버린 것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비행 시간 내내 나는 구름 위의 맑은 하늘을 노려보며 잠들지 못하는 잠에 대해 생각했다. 잠들지 못하는 인간에 대하여. 그런 인간이 스스로를 견뎌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일들에 대하여. 금세 생각의 깊은 곳까지 다다라 나는 투명한 곳에 홀로 떠있게 되었다. 어떤 피로도, 무게도 없는 지극히 깊은 곳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그를 찾아보려 했으나 남자는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다. 나는 맨 앞, 비상구쪽 좌석이었고 가장 먼저 내렸기 때문에 남자를 놓치는 일은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줄지어 걷는 양떼처럼 차례로 비행기에서 빠져나왔고, 나는 그를 기다리며 내내 서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구름 위에서 내려버린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끝내 그를 찾아낼 수는 없었고, 나는 단념하고 캐리어를 찾으러 갔다. 그날 이후 나는 사소한 수준의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잠이 들려고 하면, 잠의 투명하고 빛나는 덩어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모습을 드러내 정신을 맑게 만들어 버린다. 한두 번쯤 그러한 각성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잠들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수준의 불면이다. 그것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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