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아픈 곳이 많다 불행히도. 지난 달 스톡홀름행 페리에서 아파오기 시작했던 무릎은 아직도 낫지 않았고, 오늘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수면 부족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른손의 근육이 아프게 굳어 펜을 쥐기 힘들다. 당신은 오늘 버섯을 따러 가 버리고 없다.
지난 새벽 두 시 좀 넘은 시간에 나는 한참 깨어 있었다. 밤을 새자고 작정하기엔 좀 이르고 책을 읽기엔 늦은 것 같아 그냥 뒤척거렸다. 그러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자는 당신의 얼굴은 희고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게 왠지 무섭게 느껴져 한참 들여다보았다. 눈이 적은 빛에 적응하자 당신은 이불 안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숨을 참 잘 쉬었다. 코도 골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 모든 행복의 조건이 그 숨소리에 달려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같은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걸 깨닫고 아연해졌다.
우리가 함께한지 이제 십 년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벌써 십 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십 년 밖에 안 되었다니. 편의상 시간을 십 년 단위로 묶는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건 겨우 네다섯 묶음. 운이 좋아봐야 여섯 묶음. 그럼 이 나날들이 앞으로 겨우 여섯 번 반복되는 것으로 끝이라는 걸까? 경악스러울 정도로 적은 숫자에 나는 약간 조급해졌다. 그래서 잠이 더 멀리 달아나 버린 것도 같다.
시간은 무한대 위에 찍힌 하나의 유한한 점이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가정 하에서는 유한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순간 갑자기 무한대를 향해 마구잡이로 뻗어나갈 것이다. 길을 잃은 것처럼. 유난히 잠이 안 오는 새벽녘 사랑하는 배우자를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시간관이다. 그런데 관이라는 것은 결국 보는 방식이잖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면 우리는 보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간을 입체적으로 써야 한다. 한쪽으로 흘러가는 단선적인 시간을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런 건 어느새 시간이 이만큼 흘러갔다는 인식밖에는 주지 않는다. 우리는 10월 11일 오후 1시 47분이 아니라 당신이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아픈 손으로 일기를 쓰고 있는 찌무룩한 오후에 있어야 한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므로(얼른 돌아와 빵을 썰어줘), 또 당신은 돌아올 버스 시간을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우리는 오후 1시 47분에서 얼마간 분리된 시선을 갖게 된다. 시야의 한 귀퉁이에 언제나 서로의 그림자를 넣어둠으로써.
또 우리는 일요일 오전 여덟 시에는 세탁실 예약이 되어 있고 월요일에는 사우나 약속이 있고 화요일에는 로션을 사러 나가게 되어 있는 일정을 향해 달려나갈 것처럼 씩씩거리는 대신에, 어떤 순간들을 좀더 기억해두어야 한다.이를테면 사우나를 하러 수영복을 입고 걸어갈 때의 좀 우쭐한 기분이라든지, 사우나에서 빠져나와 당신은 곧장 바다로 뛰어들고 나는 우리가 ‘샤부샤부’라고 부르는 동작을 할 때라든지, 그날 밤 자기 전 누군가 ‘물이 차가웠어’ 하고 말하면 ‘이제 정말 하지 축제를 끝낼 때인가봐’ 라는 답을 돌려둔다든지 (혹은 그 역도 성립한다). 아무튼 우리는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런 순간들에 함께 있음을, 있었음을, 있게 됨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최대한 즐거워야해 한다. 상상력은 인류의 특권이니까.
그보다는 역시 10월 11일 오후 2시 11분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버섯을 따러 갔고 나는 버섯과 당신을 기다리며 일기를 쓰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 사우나는 월요일에 올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오는 10주년에는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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