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좀비

핀란드에는 버섯이 많습니다. 특히 이 계절엔 사람보다 버섯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쯤 써 둔 단편 초안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랑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아빠가 죽은 다음 엄마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변명하자면 나는 엄마와 아빠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사이 좋을 때보다는 싸울 때가 더 많았고,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한 명의 흉을 조급하게 쏟아내곤 했으니까. 그들은 부부였으므로 서로의 성격상 결함이나 과거의 실수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가장 하찮은 비속어에 담아 전달하는 일에도 능했다. 낱낱이 파헤쳐진 채, 심지어 반복적으로 주입되는 부모의 흠결은 둘 중 어느 쪽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심을 품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사랑의 징후 같은 것이 있기는 했다. 예컨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한 방을 썼다. 집안에 돈이 한 푼도 없어 온 가족이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소녀였던 나와 오빠를 얄팍한 유리문 앞에서 재울지언정 안방을 차지했다. 그때 오빠는 바람에도 찢어지는 사춘기였고 나는 막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던 아홉 살이었는데. 덧붙여 안방 서랍에서 나왔던 콘돔과, 며칠 뒤에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이 다섯 개에서 두 개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증거로서 채택될 수 있을 듯하다.
아빠가 자살한 다음에 엄마는 그리 망가지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짜증이 늘고 때때로 어두운 표정을 하기는 했으나 자살한 남편을 둔 과부로서는 마땅한 변화처럼 보였다. 엄마는 하던 일을 계속 했으며 살던 집에 계속 살았다. 먹던 대로 먹었고 체중도 늘거나 줄지 않았다. 울분이 되었든 서러움이 되었든 감정을 쌓아두었다 애먼 곳에 터뜨리는 일 없이 바로바로 분출했다. 건강한 자살 유가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엄마였다. 자살유가족센터같은 곳에서 엄마의 표본을 채집해가야 할 거라고, 모두에게 권장할 만한 모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경우에는 무감각했다. 부친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커 그것을 회피하고 있다거나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탓에 감정의 회로가 막혀버렸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그런 문제일지도 모른다. 뇌 전문의를 찾아가 머리를 열어보면 그렇게 쓰여 있을지도.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이란 때때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나는 무감각했고, 그것은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니 굳이 고칠 필요도 없었다. 얼마나 어긋났는지 알고 있다면 잘못 맞추어진 시계를 고칠 필요가 없는 것처럼-이 시계는 십 분 느리니까 지금 두 시일 거야. 엄마와 나는 그런 식으로 멀어졌다. 엄마는 나로부터 멀어졌으며 나는 엄마로부터 멀어졌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애초에 서로 잘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붙어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오빠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족 관계를 그럭저럭 돌아가게 했다. 다시 한 번 시계의 비유를 끌어오자면 마치 고장난 시곗바늘 같은(명절과 아빠 기일과 엄마 생일에만 잠깐 만났다 서둘러 떨어지는) 가족 관계란 어쨌든 작동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엄마마저 죽어버린 다음에야 우리 가족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안쓰럽게 여겨주었고, 뇌가 작동하는 어떤 알 수 없는 방식에 따라 애정의 크기 또한 조금 더 커졌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잘 맞는 한 쌍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배우자로 고른 반면 그녀는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골랐으니. 사랑을 좀더 보태기 위해 나는 엄마의 사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정의상으로는 자연사였어. 겨우 환갑에 자연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의사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별 수 있나. 하지만 엄마는, 우리 생각에는 속병이 나서 죽은 것 같아. 암도 아니고 바이러스도 아닌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엄마를 갉아먹어서 점점 쇠약해지다 죽었을 거야.”“속병.”그녀는 모르는 단어를 다시 발음했다. 그녀의 한국어는 완벽하지 않았고, 특히 입으로만 전해지는 단어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마음이 아파서 죽었다는 뜻이야. 마음이 아픈 게 병이 돼서.” 나는 설명했다. “괜찮아보였다고 했잖아.” “아무래도 그렇지가 않았나 봐.”“불쌍하게도.”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안아주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자주 아프다고 했어.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위가 따끔거린다거나 호흡이 가쁘다거나. 그런데 어느 병원에 가 보아도 장기는 멀쩡했거든. 몇 년째 비슷한 말을 반복하니까 오빠도 나도 점차 무관심하게 돼서 나중엔 늘상 하는 인사치레처럼 여겼어.”“응.”“그래도 엄마는 혼자서 병원을 찾았던 모양이야. 엄마 짐을 정리할 때 안 먹은 약 봉투가 집안 여기저기서 끝도 없이 나왔어. 각기 다른 약국 이름이 적힌 봉투가 말야. 어차피 효과도 없으니까 약을 타와서는 먹지 않았던 거겠지. 엄마는 그냥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걸지도 몰라.”“정신병원에는?”나는 그녀의 직설적인 단어 선택에 살짝 웃었다. “아빠가 죽자마자 데려갔었는데 정상이라고만 했어. 약도 주지 않았고.”“내 친척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자식 없이 아내랑 둘이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아내를 잃고 그 다음 주에 죽었어. 침대에 누워 잠자듯 죽어 있는 걸 이웃 사람이 발견해서 부검을 했어. 그냥 죽었다기에는 너무 젊은 사람이었어. 배를 열어보니까 위가 새까맣게 변해 있었대. 꼭 불에 탄 것처럼.”“나도 엄마를 열어봤어야 했나?”“안 열어봤어?”“의사가 와서 자연사라고만 적었어. 옆집 사람이 그러고보니 요즘 기침을 많이 하더라고 말해주었는데도.”“이상한 일이네.”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상한 일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위가 까맣게 타 있었을지도 몰라.”글쎄, 그러려나. 나는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머리칼과 가슴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녀는 언제나 좋은 향을 풍겼다. 샴푸와 로션과 오늘 아침에 뿌렸던 향수의 잔향이 섞인 따스한 냄새. 어디서도 맡아본 적 없으나 지극히 익숙한 향. 땀을 흘리거나 몸을 씻어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의 살결이, 잘 빚은 떡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그것이 베이스 노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연인의 체취에 쉽게 빠진다고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유전자의 습관이라고 했다. 나로부터 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의 유전자는 달큰한 향을 풍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인을 고르는 건 내가 아닌 나의 유전자인 셈이다. 그녀가 팔을 움직여 나의 등을 감싸안았다. 아직 몸에 익지 않은 어색한 행복이 등을 통해 흘러들었다. 그녀의 손에 닿은 나의 몸도 힘 없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탄수화물 계열의 음식처럼 말랑말랑하며 향기로울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불안해졌다. “불쌍하게도.” 그녀는 다정하게 속삭이곤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우리 엄마의 죽음은,” 나는 말했다. “위를 까맣게 태울 만큼 뜨겁고 강렬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축축하고 뜨뜻미지근한 현상이었어. 엄마한테도, 나한테도.”그녀의 손이 나의 잔등을 다정하게 두드렸다. 아픈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애정과 동정심으로 충만한 손길이었다. 동정이 애정의 먹이가 된다면 나는 방금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셈이겠지. 눈을 감자 잠이 밀려들었다. 희미한 죄책감이 유성처럼 빠르게 어둠속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유학생이자 대학원생.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마이셀리움을 연구한다. 마이셀리움이란 버섯의 균사체, 그러니까 쉽게 말해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견고하고 유연하면서도 잘 자라서 어떤 것으로든 키울 수 있다는 것 같다. 페트리 접시에 배양한 버섯의 뿌리를 어떤 신비로운 방법으로 잘 주무르면 가죽이 되고 벽돌이 되는 식으로. 나는 그녀가 가져온 버섯 가죽을 본 적은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지 못했다. 마이셀리움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도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실은 핀란드에 가려고 했어,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우리는 시끄러운 술집에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려면 서로의 입 모양을 자세히 보아야 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정말로 진지한 태도로 버섯을 연구하거든. 거긴 숲이 많잖아. 교환학생 자격으로 핀란드에 갔다가, 내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석사 졸업 논문으로 쓴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사람이 한국의 한 대학 교수라는 사실을 듣고서 목적지를 틀었어. 우리는 같은 학교에 다녔고(나는 졸업하기 직전이었지만), 공통의 이야깃거리도 많이 갖고 있었다. 나의 영어 실력과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대화는 오히려 잘 굴러갔다. 적당한 삐걱거림이 서로의 세부적인 흠결을 가려주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자리를 옮겨 과음했다. 술김에, 그리고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잤다. 섹스를 하고나서 나는 옛날 소설 속 숫처녀처럼 울었다. 그 무렵의 나는 거의 아무하고나 잤지만 여자와 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죽이려 들었다. 미처 방어구를 입히지 못한 여린 부분에 가차없이 날카로운 것을 찔러넣은 것처럼, 황망하면서도 억울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나는 능숙한 척을 집어치우고 그저 그녀에게 매달려 울었다. 충분한 양의 물이 빠져나가자 정신이 들었고, 그녀가 나를 내내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하룻밤을 함께 보낸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나는 원래 여자랑 자지 않아> 라든지 <우리 엄마는 날 싫어했을까?>라든지. 발랄한 로큰롤 음악 타이틀로 딱 어울리는 문장이다. 그런 말을 다 듣고도 나와 사귀어준 건 그녀의 동정심 탓이니 그녀의 책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동정심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 함께 살게 되었다. 그녀와 관계된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좀 허겁지겁 해치우는 편이라 상황만 갖추어진다면 결혼도 하게 될 것 같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그녀는 대학에서 마이셀리움을 연구하고 있고, 나는 자동차회사 비서실에서 일한다.
“그걸로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물으면 그녀는 흥분한 아이처럼 대답을 쏟아낸다. 때때로 버섯 가죽 샘플을 가져와 만져보라고 내밀기도 한다. 진짜 가죽처럼 부드럽지? 촉감만으로는 거의 구분이 안 되지? 물론 대답은 정해져 있어서 나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정말이네! 모르고 보면 진짜 가죽인 줄 알겠어!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죽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일단 튼튼하지 않고 또 어느 시점까지는 살아있어서 진짜 가죽처럼 만들기는 어렵다. 물론 진짜 가죽도 살아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생명이라기보다는 생명체를 덮은 껍질이었으니까, 예컨대 나와 그녀의 피부는 색과 품질은 좀 달라도 나머지 면에선 동일하다. 일정함, 생산성, 가공가능성 등등. 그러나 버섯의 균사체란 생체 매스라 균질한 생산품이 나오지 않는다. 온도, 습도, 그리고 균사체의 기질에 따라 결과물의 밀도와 두께, 강도, 질감도 달라진다. 그럼 그녀는 갑자기 착잡한 얼굴을 한다. 바로 그 점을 개선하는 게 그녀의 연구 주제다. 약품과 열풍으로 건조시킨 버섯 가죽에 기름을 먹여 튼튼하게 하는 실험을 수도 없이 반복해왔다. 연구 성과는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나 싶으면 다른 문제가 튀어나오고, 연구는 끝 없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한 바퀴를 돈다. 그러는 동안 또다른 소와 양이 죽어간다. 딱히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녀는 동물 고기와 가죽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버섯은 불쌍하지 않아?” 나는 일부러 짓궂게 묻곤 한다. 주로 그녀가 버섯을 볶고 있을 때. 처음에는 그 장면이 왠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닭을 키우는 사람은 달걀을 먹지 않으리라는 환상이 내게는 있었다. 그녀는 나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적하는 대신 무시로 일관한다. 그래도 더 치근덕거리면 “불쌍하면 넌 굶어”하고 톡 쏘아붙인다. 실은 그 말이 듣고 싶어 나는 매번 같은 농을 걸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녀는 표고버섯으로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볶은 표고버섯에 크림을 넣은 스파게티였다. 그것은 그녀가 핀란드에서 배워 온 버섯 소스 레시피를 개량한 것이었고, 짧은 교환학생 생활이 그녀에게 남긴 거의 모든 것이었다. “표고 냄새 좋다.” 온 집안에 떠도는 버섯 향에 감탄하며 나는 말했다. 그녀는 뒤돌아선 채로 스파게티를 볶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킁킁거리자 어쩐지 서두르는 기색으로 가스불을 끄곤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더 안 볶아도 돼?” 나는 물었다. “충분해.”“맛있겠다. 크림이랑 표고를 함께 볶으니까 향이 더 진해지는 것 같아.”나는 컵과 수저를 챙겨 식탁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면을 접시에 옮겨 담는 동안 물티슈로 상을 닦거나 물을 따르거나 하며 식사 준비를 거들었다. 곧 그녀가 접시 두 개를 들고 다가와 각자 자리 앞에 내려두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것처럼 예쁘게 담은 스파게티 하나와 산더미 하나였다. “맛있다.” 하고 나는 감탄했다. “식감이랑 향이 정말 좋아. 원래는 무슨 버섯을 넣는다고 했더라?”“칸타렐리.” 하고 그녀는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 버섯을 넣은 것도 궁금해. 아무래도 표고랑은 많이 다르겠지.”“몰라. 잊어버렸어.”“잊어버렸다고?”“이 버전을 너무 많이 먹어서 원래 건 다 잊어버렸어.”그거 아쉽네, 하고 나는 말했다. 나중에 함께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올 차례였으나 그녀는 침묵했다. 그저 많은 양의 스파게티를 포크에 감아 후룩후룩 먹을 뿐이었다. 스파게티에 한해서라면 그녀는 대식을 했다. 다른 땐 나와 비슷한 양을 먹는데, 유독 스파게티만. “시작을 잘못 했어. 처음 혼자 스파게티를 만들었을 때 한 팩을 다 삶아 먹었었거든.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한 팩이 대강 일인분일 거라고 생각했지.”“스파게티 한 팩이면 대강 오인분 쯤 될 텐데. 너무 많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끝내 다 먹었어. 그때 기준을 잘못 세워서 지금도 스파게티 만큼은 이 정도를 먹어야 성에 차.”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면과 버섯을 먹어치웠다. 먹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약간 불안하기도 해서 나는 평소보다 느리게 먹었다. 접시가 거의 비어갈 즈음 그녀는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할 말이 있어.”뭔데? 하고 물었으나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틈을 두었다. 접시에 남은 버섯을 박박 긁어먹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처럼. “할 말이 뭔데?” 하고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감염된 것 같아.”“감염?”“마이셀리움 분야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야. 감기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잠꾸러기 기생충처럼 드물지도 않지. 이번에는 내가 걸렸을 뿐이야.”“잠꾸러기 기생충이 뭐람.”“그러니까.”“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병이 다 나을 때까지 격리실에라도 들어가 있어야 해? 아, 나한테도 감염될 수 있는 건가?”“너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그녀는 말했다. “그냥 내 옆에 있으면 돼. 평소처럼.”“로맨틱하기도 하지.”“지금 당장 네게 병을 옮기진 않아. 현재로서 중요한 건 그거야. 나는 감염되었고, 남은 시간을 현명하게 쓸 작정이야. 너와 함께.”“잠깐, 남은 시간이라니? 꼭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죽는 건 아냐.”그녀가 이렇게만 말했기 때문에, 그러고는 별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접시에 남은 소스를 긁어 먹었기 때문에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심각한 일은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을 병은 아니라고 했으니 다 괜찮을 거라고.
감염의 첫 번째 증상은 기침이었다. 작은 헐떡거림으로 시작된 기침은 금세 그녀의 몸 전체를 울릴 만큼 커졌고, 또 잦아졌다. 가만히 있다가도 그녀는 마치 사레 들린 사람처럼 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그것은 사레 들린 사람의 켈록거리는 소리와는 좀 다른 듯했고, 몸 안에 있던 감기기운 시원하게 터져나가는 소리와도 비슷한 점이 없었다. 어딘가 막혀 있다고나 할까, 아마도 기침이 나오려는 순간 입을 최대한 다물려고 애쓰는 버릇 때문이었을 텐데, 그녀의 기침은 포장된 공기 방울을 폐에서 꺼내려는 것처럼 몸 전체를 부풀렸다 꺼뜨리며 고통스럽게 이어졌다. 기침은 밤에 심해졌다. 낮 동안에는 그럭저럭 버티다가도 밤이 되면 온몸이 쿨럭거리기 시작해 잠조차 못 이룰 지경이 되었다. 새벽에 갑자기 폐가 날뛰어 깨어나는 일도 있었다. 그럼 그녀는 화장실로 달려가 숨죽여 쿨럭거렸다. 나까지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으나 나는 번번이 눈을 떠 그녀가 침대로 돌아올 때까지 뒤척거렸다. 머리맡에 자리끼를 떠놓고 잤지만 물은 효험이 없었다. 내일 아침엔 병원에 가 볼까? 어느날 나는 자는 척 하기를 그만두고 물었다. 기침이 기어이 그녀의 갈비뼈를 부러뜨릴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텀블러를 내려두고, 기침이 어디까지 왔나 확인하려는 것처럼 잠시 가슴을 누르고 있다가 고개를 저어보였다. 안 가도 돼. 그 말을, 적어도 그 시점까지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쨌거나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할테니까. 어쨌든 아침에는 가뿐하게 일어나니까. 정말로 그랬다. 밤새 기침에 시달리느라 한숨도 자지 못한 날에도 그녀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달걀과 양배추로 부침을 만들고 한 박자 늦게 일어난 내가 커피를 내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껍질을 벗기지 않은 사과와 함께 아침 식탁을 차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요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기침이 너무 심해져 불 앞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슴 통증과 두통도 문제가 되었다. 병원에 가자는 말에 점차 힘이 실렸으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안 가도 돼. <곧 나을 테니>와 <병원에 가 봐야 별 도리 없으니>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안 가도 돼>였다. 다음으로는 운동을 그만두었다. 수영과 웨이트를 먼저 포기하고 계절마다 바꾸어 즐기던 클라이밍이나 스노보드 같은 레저 스포츠도 찾지 않았다. 옷을 정리해 주변에 나눠 주었으며 보험을 해약했다. 도서관도 영화관도 가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낮아진 활동량에 몸을 적응시키려는 것처럼 적게 먹었다. 차라리 보험 수령인을 나로 변경하지 그래? 나는 농담처럼 헤실거렸다. 죽지는 않는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그런 식으로라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 확언에 나는 처절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웃었다. 잠이 부족해서 눈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다 졸음이 찾아오면 기침도 어김없이 따라와 폐를 쥐어뜯었다. 열과 두통과 흉통과 기침과 만성피로로 탈력된 와중에도 그녀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었다. 어차피 넌 보험금 못 탈 텐데. 나는 죽지 않을 테니까. 그것은 위로가 아닌 확신이었다.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소한 아이러니들은 깨끗이 무시한 채 그녀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죽지만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고.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지 모르는 밑바닥을 치러 내려가는 중일 뿐이라고.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자 그녀는 마침내 출근도 그만두었다. 연구는 거의 마지막 단계였으므로 몇 가지 장비만 갖추어지면 집에서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대신해 연구실로 향했다.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노트북과 버섯 가죽 샘플을 가방에 쑤셔 넣고 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마른 체격의 잘생긴 남자가 문간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침입에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이내 뭔가 떠오른 것처럼,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와 내게 악수를 건넸다. 교수였다. “아시야의 아내분 되시죠?”나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아, 네. 문이 열려 있길래 그냥 들어왔어요. 카드키를 가져오기는 했는데….”“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잘 오셨어요.”“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거든요. 반차를 쓸 수 있게 돼서.”“반차요.” 의미를 찾으려는 듯 그가 반복했다. “아시야는 좀 어떤가요?”“덕분에 많이 나아졌다고 말하고 싶은데 빈말로라도 그건 어렵겠네요.”“….”“그래도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워낙 젊고 건강한 사람이니까요. 곧 나아질거라고 생각해요. 혹시 연구실 사람들을 마주치면 자긴 괜찮다고 전해달라던데요.”부러 농담을 섞어 말했으나 교수는 슬픈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그런식으로 울상짓는 장면을 처음 본 탓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순식간에 새빨개진 얼굴이 터질 듯했다. 그는 눈물을 집어넣으려는 것처럼 고개를 쳐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시야가 말을 안 했나 보군요.” 쇠를 문 듯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어떤 말을 말씀하시는지….”“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시야의 방식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배우자에게만큼은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오래전에 합의했어요. 만약 스스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동료의 입을 빌어서라도요. 실은 그래서 일찍 와 본 겁니다. 아시야는, 음, 용의주도한 사람이잖아요.”나는 교수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채 멍하니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오늘 6시 전후로 방문하실 예정이라고 아시야에게 들었어요. 그런데 굳이 시간을 콕 집어 말한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아내분과 마주치지 못하도록 수를 쓴 게 아닐까 싶어 오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만나뵙게 되었네요.”“아뇨. 정말로 저녁쯤 올 생각이긴 했어요. 예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반차를 쓰고 나온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었어요.”교수는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덧붙여 정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하지 않았어요.”“저도 아내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네….”“결혼식 같은 세리머니에는 둘 다 관심이 없어서요. 혼인신고도 올리지 않았고, 결혼사진도 없습니다만 벌써 십오 년째 부부로서 함께 살고 있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알 것 같네요. 하지만 결혼한지 십오 년이나 되었다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시는데요.”“아내를 일찍 만나서 그런지 종종 그런 말을 들어요. 아무튼 아시야는 종종 ‘내 아내’라는 말을 쓰곤 했습니다. 이 연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시야에게 아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쪽 성향인지 백 퍼센트의 결혼을 하는 사람이 애초에 드물거든요. 결혼식만 하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사람, 그 반대인 사람, 외국에서만 식을 올린 사람이 오히려 보통이라고 여겨지죠.”“그러니까 저는 아시야의 아내가 맞군요.”“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답니다.”“그래서 제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교수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나이에 맞지 않게 꾸밈없는 구석이 있어서 나는 왠지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다. 목욕탕 같은 곳에서 서로의 꾸밈없고 완벽하지 못한 육체를 바라보며 멋쩍게 이야기하듯이. 아시야는 감염되었습니다, 교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그러나 똑바로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아시야는 감염되었습니다.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때때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뭔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던 것 뿐이죠. 현재로서는 예방책도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감염되었다고는 들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이 들지 않는 병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워낙 건강한 사람이니까요. 한 번 크게 앓고나면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믿고 있어요.”“아시야는 병에 걸린게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건 잘 몰라서요. 병과 감염 사이엔 무슨 차이가 있나요?”그가 시선을 떨구었다. 단단히 잡고 있던 컵을 손에서 놓치듯이. 뭔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마 착각일 것이었다. 짧게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그가 말했다. “그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은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그 균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됩니다. 드물게는 버섯을 생으로 먹거나 균으로 오염된 물을 마셔서 감염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호흡기를 통해 몸에 들어와요. 그리고 빠른 속도로 번식합니다. 폐에 뿌리를 내리고 기도에 구멍을 뚫죠. 그리고 자라나는 겁니다. 수분을 적게 섭취하면 성장 속도를 제한할 수 있지만 완전히 죽일 수는 없어요. 한 번 폐에 뿌리를 내리고나면 세포에 완전히 결착되니까요. 일단 변형된 폐는 다시는 원래 모양대로 되돌아오지 않고요. 수술은, 권장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수술을 시도한 사람들은 모두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어요. 어디까지가 살이고 어디부터가 버섯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시야의 폐에는 버섯이 자라고 있습니다. 폐 자체가 이미 부드러운 톱밥 덩어리처럼 변해 있을 거예요. 장기를 섬유화시킨 다음에는 다시 기도를 따라 올라와 뇌를 향해 번져가겠죠. 그럼 갈비뼈와 두개골 안이 버섯으로 가득 차고, 결국 가슴을 찢고 나오는 겁니다. 이건 마이셀리움 분야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시작 전에 고지를 받죠. 언젠가 잘못 흡입한 균 하나가 폐를 배지삼아 자랄 수가 있다. 그것이 가슴을 찢고 나오면 우리는 버섯이 된다. 그것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으며 비가역적인 운명이다. 하지만 이 전설같은 이야기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정말이지 드문 일인데다가, 애초에 버섯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같이 외톨이라서일지도 모르겠군요. 핀란드에서는 매년 한두 명 정도가 버섯이 됩니다. 그 일정한 감염률 때문에 가장 탁월한 연구자가 받는 상이라고도 불려요. 명예롭지만 동시에 매우 슬픈 농담이지요.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걸 알면 보통은 배우자에게만 조용히 그 사실을 알립니다. 신변을 정리하고, 가족과 긴 시작을 들여 작별 인사를 나누고, 아직 자아가 남아 있을 때 스스로 숲으로 걸어 들어가요. 몸 안의 버섯이 자라는 속도는 자기 자신조차 예측할 수가 없어서 언제든 뇌가 버섯으로 가득찰 수 있으니까요. 뇌에 첫 번째 버섯이 피어버린 이후에는 그저 걷는 버섯이 되어 하염없이 주변을 헤매게 될 뿐이에요. 완전히 뿌리를 내릴 만한 곳을 찾아서…. 내장은 물론이고 사지와 얼굴까지도 퍼석퍼석한 버섯이 되어버릴 때까지….우리 연구자들은 그것을 버섯 좀비라고 부릅니다. 저는 딱 한 번 그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저를 가르치신 교수님께서 그런 식으로 버섯이 되셨죠. 그분은 눅씨오라는 이름의 숲에 계십니다. 이제는 사람의 형태를 찾을 수 없지만 저는 그분이 뿌리내린 장소를 기억하고 있어요. 핀란드에 갈 일이 생기면 추모 삼아 그 근방을 산책하기도 하죠. 추모라고는 하지만 감염된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버섯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좀비라고 부를 수가 없겠군요. 아마도 아시야는 홀로 버섯이 될 결심을 한 모양입니다. 아내분께 감염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은 걸로 보아 적당한 때를 잡아 홀연히 사라질 계획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당사자의 의견에 반해서라도 적어도 한 명에게만큼은 사실을 알리자고 미리 합의한 겁니다. 부디 아시야의 곁을 지켜주세요.”
집으로 돌아가니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오랜만에 기침 없는 깊은 잠에 들었음을 말해주었다. 나는 버섯 가죽과 노트북을 식탁 위에 부려놓고 해 지는 창밖을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이불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따져 묻고 말았다. “왜 말 안했어?”어떤 직감이 있었던 것처럼 그녀는 침묵했다. 우리가 싸울 때 늘 그러했듯이 내게 화를 쏟아낼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럴수록 더 화가 났다. “밖에서는 날 네 아내라고 말하고 다녔다며. 누구나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며. 정말로 내가 네 아내라면 왜 감염에 대해 알리지 않았어?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언제 나를 떠나 버섯이 되러 갈 생각이었어? 핀란드에서는 숲으로 간다는데, 너는 뭐 어디 북한산에라도 가려고 했어? 이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그녀의 푸른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을 밝히지 않은 탓에 그 푸른색은 평소보다 탁해 보였다. 나는 그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신경질적으로 스위치를 때려 전등을 켜고 들으라는 듯이 흐느껴 울었다. “너는 몇 주 전부터 버섯을 먹지 않았지. 평소보다 훨씬 더 깔끔을 떨었고, 네가 만진 모든 걸 알코올로 닦아냈어. 내게 닿기 전에 전부 소독하려는 것처럼. 아픈 와중에도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했고, 기침 핑계를 대며 내게 입맞추지 않았고, 나를 홀로 내버려두었어. 그거 알아? 네 고통을 지켜보는 나는 감히 외로울 수도 없었어. 그래도 괜찮았던 건 네가 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어떻게 그 말로 나를 기만해? 네가 버섯이 되어버리고나면 나는,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사람으로 살아가야 해?”“넌….”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그녀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그 말에도 매달릴 준비를 했다. 뭐라고 말하든간에, 그러니까 그것이 아주 다정한 말이든 잔인한 말이든간에 매달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기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미 버섯이 자라고 있을 폐를 두드리며 기침이 이어졌다. 그 찢어진 북 같은 소리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거칠게 잡아뜯었다. 그녀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내겐 과분할 정도로 선량하고 순수한 애정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혼자 버섯이 되겠다는 다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매번 자기가 누웠던 자리를 털고, 욕실을 솔로 문질러 닦고, ‘우리 버섯순이가 요새 통 버섯을 안 찾네’ 하는 말에 웃어보일 수는 없었다. 나처럼 이기적인 인간은, 이런 순간 마저도 자기 자신이 불쌍해 견딜 수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은 그녀와 만나지 않는 편이 옳았다. 더 나은 판단을 내렸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나는 울면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파서 쪼그라든 어깨가 격렬한 기침으로 들썩거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기침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며 나는 그녀의 등을 열심히 쓸어내렸다. 원인모를 복통에 배를 문질러주듯이. 손바닥을 짚으면 이마의 열도 내려갈 것이라 믿듯이. 의사가 아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게 전부였다. 기침의 반동이 나의 갈비뼈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나는 그녀를 더 세게 안았다. 파삭 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가슴을 밀어내는 이물감과 함께 기침이 멎었다. ….
「여보세요.」 “…가슴이 열렸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지금 자택이신가요?」 “네. 아내는 침대에 있어요. 가슴이 열린 채로. 그새 버섯이 많이 자랐어요. 노랗고 쪼글쪼글한 버섯인데, 꼭 꽃다발처럼 보여요.”「우선 문과 창문을 닫고 빈틈없이 막으세요. 침실에 중요한 물건이 있으면 미리 챙겨두시고요. 균이 묻으면 다시 쓸 수 없어요. 듣자하니 가슴이 열린 뒤로 시간이 좀 흐른 것 같네요. 맞죠? 너무 늦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고 방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눈을 깜박이는데요.”「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서두르셔야 해요.」 “아내가 저를 보고 있어요. 대답하는 것처럼 눈을 깜박여요.”「생체 반응일 뿐입니다.」 “살아있다는 뜻이잖아요….”「아시야의 뇌는 이미 버섯이 되었어요. 뿌리 내릴 곳을 찾으면 곧바로 머리가 열릴 겁니다. 그 다음에는 몸까지 완전히 버섯이 되어버리고요. 서두르세요. 포자가 날리기 전에 그 집에서 벗어나셔야 해요.」“핀란드에서는 숲으로 간다고 했죠. 사람들은 그곳에서 버섯이 된다고요.” 「네. 한 번 균을 퍼뜨리고 나면 평범한 버섯이 됩니다. 핀란드의 숲은 인적이 드물어서 사람을 감염시키기 전에 대부분의 균이 먼저 죽지만 아시야는 자기 방에 있으니까요, 일단 그 순간만 피합시다. 아시야가 쫓아오더라도 떨쳐내고 도망치셔야 해요. 그건 아시야의 의지가 아닙니다. 그저 뿌리내릴 곳을 찾아 다닐 뿐인….」 “이 방에서 버섯이 될 거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그렇죠?”「제대로 밀폐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균이 언제까지 살아있을지 모르니까 이 방에 평생 홀로 가둬두라는 거잖아요. 평생을 버섯이 되어버린 채로. 하지만 교수님, 아시야는 좀비가 아니에요.” 「….」 “아내가 저를 보고 있어요. 눈을 깜박거려요. 가슴의 버섯이 계속 자라고 있는데, 너무 아파 보여요. 이거 잘라내면 고통스러울까요? 이대로 두는 게 나을까요?”「통각이 없을 테니 고통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잘라내봤자 계속 자랄 겁니다.」“뿌리까지 뽑아내면요? 예전에 아내에게 들었어요. 다음 해에도 버섯을 계속 채집할 수 있도록 버섯의 뿌리를 남기고 잘라내야 한다고요.”「그럼 아시야의 몸 위에서는 자라지 않겠죠. 하지만 뿌리채 뽑아낸 버섯은 분리된 채로 자라나 결국 포자를 흩뿌리게 될 겁니다. 그럼 일이 더 커져요.」“전부 다 뽑아내면요. 전부 다 뽑아내면 버섯이 더 자라지 않겠지요.”「그 말은 이미 아시야의 장기를 전부 다 들어낸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믿어주세요. 저희도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보았어요. 얼리거나 불에 태우거나 알코올에 담가도 어느 시점에는 좀비 버섯으로 변모해 포자를 퍼뜨리고야 만다고요. 하지만 그 전까지는 안전합니다. 제발 서두르세요.」 “아내를 혼자 둘 수 없어요.”「말 좀 들으세요! 괴롭더라도 나가셔야 합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시야의 내부는 이미 버섯이에요.」 “….”「아시겠어요? 아시야는 버섯이란 말입니다. 곧 귀와 눈에서 버섯이 비어져나오기 시작할 거예요. 그 시점에는 이미 혀가 버섯화 되어 있을 텐데, 버섯이 자라는 속도 때문에 꼭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이가 떨어지고, 뺨이 뚫리고, 턱이 점점 벌어지다가 마침내 버섯의 부피를 못 견뎌 깨지고 나면 머리뼈가 세로로 갈라질 겁니다. 그 다음 몸 전체가 마치 안팎으로 뒤집어지듯 버섯화 되고요. 이런 모습을 정말로 보고 싶으세요?」 “교수님….”「지금이 마지막 기회예요. 가슴이 열렸다고 했죠? 아시야가 뿌리내릴 곳을 찾는 사이에 어서 도망칩시다. 버섯이 아시야의 몸을 전부 차지했다고 여기는 순간 번식을 위해 포자를 날릴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 아내는 아까부터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걸요.”「예?」“아시야는 지금 제 품에 안겨 있어요. 한참 전부터 누워만 있었는데요. 아무도 해칠 의도가 없어 보여요. 아니, 버섯이 누구를 해치는 건 아니지만요. 아무튼 아시야는 이미 뿌리내릴 곳을 찾았어요.”「그런 건 처음 보는데….」 “이미 늦은 걸까요?”「잠시만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제가 좀 찾아보겠습니다. 일단 자리를 피하시고….」 “알겠습니다.”「제발….」 ……….예열된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자 선명한 김과 함께 냄새가 풍겼다. 나는 편으로 썬 마늘을 팬에 던져넣고 가스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익어가는 마늘이 이따금 틱틱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름을 튀겼다. 실리콘 주걱을 이용해 그것을 휘휘 젓고, 노르스름하게 변한 마늘의 표면을 확인한 다음 오일에 향이 배도록 뚜껑을 덮었다. 나는 아내의 요리노트를 보았다. 필기체로 휘갈겨쓴 메모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이셀리움 가죽에 대한 아이디어와 기념일 메뉴와 버섯 관련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있기도 했다. 그중 한국어로 또박또박 적어둔 글씨들은 아마 나를 위한 것이었겠지.
*버섯은 교배형으로 번식한다. 고정된 성이 없으므로 모든 개체가 잠재적인 파트너다(모든 단핵균사가 잠재적인 교배 대상이다). 교배형이란 서로 다른 암호의 조합과 같다. 서로의 호환성 코드가 맞으면 번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버섯은 2~3만의 교배형을 갖기도 하다. *버섯은 유성생식 단계에서 핵만 교환한다. 난소, 고환, 정자, 난자 같은 성별 기관은 없다. *포자가 발아해 단핵균사를 생성하면 다른 교배형의 단핵균사와 만난다. 서로 다른 유전자의 핵 두 개를 공유하는 이핵균사를 형성하고 이핵균사가 자라서 버섯의 균사체를 형성한다. 버섯 자실체에서 핵이 결합하고 감수분열해 새로운 포자를 생성한다.
타는 냄새를 맡고 나는 얼른 불을 껐다. 팬에 오일을 추가해 흔들었다. 다행히 완전히 타지는 않은 듯했다. 아주 예전에, 지나가듯이 버섯의 생식에 대해 물었을 때,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어를 더듬던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카데믹한 단어들은 곧장 떠오르지 않는다며 너는 몹시 아쉬워했었다. 내가 먼저 버섯에 대해 묻는 일이란 서울 하늘의 별처럼 드무니까 나중에 꼭 알려주겠다고. 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았다. 작은 칼과 플라스틱 바구니를 든 나를 보며 눈을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푸른 눈에 동그란 형광등 불빛이 비쳐서 아주 맑아 보였다. 나는 나의 무심함에 새삼 놀라 불을 끄곤 네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말하자 네가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너의 벌어진 가슴을 손으로 잡아당겨 버섯이 어디까지 자랐는지 확인해보았다. 조금 전보다 한결 피어난듯한 노란 버섯이 꼭 나팔꽃 봉오리처럼 천장을 향해 몸체를 뻗고 있었다. 개중 가장 통통한 것을 골라 감싸듯 쥐고, 칼로 주변을 눌러가며 뽑아냈다. 톱밥처럼 건조해진 폐에서 실핏줄같은 뿌리가 쑤욱 달려올라왔다. 그렇게 한 바구니를 채우자 네 가슴에도 빈 공간이 생겼다. “사랑해.”네가 나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 나는 네 뺨에 입을 맞추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준 다음 방 밖으로 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파스타를 많이 먹어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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